영국 프로젝트 현장에서 계약 매니저로서 가장 허망한 순간은, 내가 쓴 돈이 내 돈이 아니라고 부정 당할 때다. 발주처 담당자는 본인이 미룬 프로젝트에 대한 Cost Impact를 가져오라고 해놓고서는, 막상 갖고 가면 갑자기 경제학자처럼 변신한다. Contractor로서 다시 산정한, Subcontractor가 실제로 재견적한 청구서에 대해, ‘지수 연동(CPI)’이라는 논리로 실제 청구받은 금액에 대해 가차 없이 오려낸다.
“요즘 물가 상승률이 4% 대라면서요? 그 이상은 곤란합니다. Ofgem(영국 에너지 규제 기관) 가이드라인도 그렇고요.”
얼핏 들으면 합리적인 경제학자의 조언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런식이면 나도 어느 중국집에서 나가면서 계산할 때, “물가상승률이 5% 밖에 오르지 않았는데, 이집 짜장면 가격은 20% 나 올랐네요? 5% 이상은 곤란합니다. 5% 로 계산한 금액으로 받으세요’ 라고 계산하면 어떨까?
아주 이상한 예시를 들었지만, 우리가 진행하는 NEC3 기반의 Bulk 7 계약은 그런 ‘평균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Clause 63.1이라는 단단한 조항을 만들어두었다. 그곳엔 지수가 아니라 ‘Defined Cost’, 즉 실제로 발생했거나 발생할 비용을 기준으로 보상(CE)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63. Assessing compensation events
63.1 The changes to the Prices are assessed as the effect of the compensation event upon
– the actual Defined Cost of the work already done,
– the forecast Defined Cost of the work not yet done and
– the resulting Fee.
The date when the Project Manager instructed or should have instructed the Contractor to submit quotations divides the work already done from the work not yet done.
발주처 PM은 종종 우리와 그들 사이의 계약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상위 기관인 Ofgem의 정책이나 하도급 계약서의 내부 조건을 들먹이며 연막을 친다. 하지만 계약 매니저인 나의 역할은 그 연막을 걷어내고 다시 우리의 계약서를 확인하고, 나의 논리가 틀리지 않았나를 보는 것.
“우리가 발주처와 맺은 건 Ofgem과의 정책 협약서가 아니라 Bulk Contract이며, 당신이 미룬 Site Schedule은 Works change이고, 이는 분명 Compensation Event사유입니다. 이를 평가하기 위하여 Clause 63.1에 따라 ‘지수(Index)’가 아닌 ‘실제 비용(Defined Cost)’로 제시하여 Contractor의 권리에 따라 청구합니다. 하도급 업체의 추가 비용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부담해야 할 ‘Defined Cost’입니다. 3.8%라는 지수는 참고하겠으나, 우리의 손실을 메워줄 숫자도 아닐 뿐더러 계약적으로 유효하지도 않습니다”
이와 함께 하도급 업체의 투박한 가격 인상 요청서도 첨부해서 제시하자. 영국 프로젝트를 하면서 배운 것은, 원가라는 이유로 숨기면서 C.E 에 주저하는 것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깔끔하게 +Fee만 우리의 이익으로 얻어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증빙이 없는 C.E는 상대편이 Reject를 하기 너무나도 쉬운 구실을 주는 것이기에, 실제로 치러야 할 비용을 공개하며 더 이상 물러나지 마라고 먼저 말하는 것이 발주처를 압박하기 가장 좋은 무기이다.
CEN Spirit, 즉, act in a “spirit of mutual trust and co-operation” 의 말처럼, 발주처와 공급처의 “서로 손해 보게 하지 않겠다”던 그 정신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지수가 아닌 실제(Actual)를 말해야 한다. 통계청의 데이터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주고받은 견적서와 계약 조항에 집중하자.
특히나 지금과 같이 Sub Contractor의 입김이 강해지는 시장에서 발주처에게 휘둘린다면, 중간에 낀 Contractor는 피만 흘릴뿐.
[핵심요약]
- 지수(CPI)는 계약상 유효하지 않은 숫자이다. Clause 63.1(Defined Cost)으로 정산받는다.
- 발주처와 규제 기관(Ofgem)의 관계는 우리와의 계약보다 우선할 수 없다.
- 하도급 업체의 인상분은 그 자체로 ‘Defined Cost’다. 숨길 것 없이 이를 증명할 자료로 제출하며 협상을 이끌어 나가자.